Kid Milli BEIGE의 공식 앨범 커버
RITBAK ReviewArtwork via Spotify ↗2026. 07. 27
모든 리뷰

Domestic · Album

본연을 찾아 돌아간, 가장 선명한 베이지

BEIGEKid Milli

유행을 좇는 대신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취향이 겹치는 자리로 돌아간다. 《BEIGE》는 무채색이 아니라 키드밀리만의 색이 번지는 바탕이다.

8 min readRITBAK Review

유행을 좇는 대신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취향이 겹치는 자리로 돌아간다. 《BEIGE》는 무채색이 아니라 키드밀리만의 색이 번지는 바탕이다.

Released
2023-05-30
Genre
Trap / Alternative
01

베이지는 무채색이 아니라 본연의 색이다

《BEIGE》가 도착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2020년의 《BEIGE 0.5》가 완성본을 예고한 뒤, 키드밀리는 계획에 없던 《Cliché》를 지나 다시 이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은 앨범을 웅장하게 만들기보다 선택을 명확하게 했다. 무엇이 팔릴지를 계산하는 대신,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언젠가 구현하고 싶었던 감각을 지금의 기술로 꺼내놓는 것.

그래서 여기서 베이지는 안전한 중간색이 아니다. 키드밀리가 자신의 피부와 어머니의 피부에서 떠올렸다고 말한 이 색은, 남의 유행을 덧입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바탕에 가깝다. ‘BEIGE theme’은 그 바탕 위에서 음반의 태도를 가장 먼저 선언한다. 랩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남보다 앞서기 위한 과시보다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하는 단호함이 더 크게 들린다.

02

인터루드가 만든 여러 개의 거울

열일곱 트랙의 호흡을 지키는 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사람의 교대다. ron, pH-1, 릴러말즈가 맡은 인터루드는 잠깐 쉬어가는 스킷이 아니라 각자의 목소리로 완결된 작은 곡이다. 키드밀리는 자기 목소리만 계속 이어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 이 선택 덕분에 앨범은 한 사람의 독백보다 여러 방을 통과하는 믹스테이프처럼 움직인다.

피처링 역시 장식품으로 머물지 않는다. ‘Still friend ?’에서 pH-1은 앞선 인터루드의 여운을 본편으로 연결하고, ‘Simple Poem’의 Rad Museum과 ‘R.I.P’의 B.I는 키드밀리의 건조한 음색 옆에 다른 온도를 놓는다. 이때 주인공은 한발 물러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를 초대하고 어디서 자리를 내줄지 결정하는 편집 감각 자체가 그의 존재감이기 때문이다.

03

유연한 랩이 장르보다 먼저 움직인다

《BEIGE》의 프로덕션은 하나의 유행어로 묶이지 않는다. ‘HONDA !’의 단단한 추진력, ‘Test me ?’의 비틀린 긴장, ‘twirl’의 가벼운 회전, ‘BNC’와 ‘Coupe !’의 서로 다른 거리 감각이 연달아 놓인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키드밀리는 목소리를 과장해 변신하기보다 문장의 밀도와 억양을 조금씩 조절한다.

이 유연함은 그가 오래 쌓아온 가장 강한 기술이다. 비트에 자신을 증명하려 달려들지 않고, 어느 순간에는 박자를 앞서고 다른 순간에는 여백에 기대며 곡의 모양을 바꾼다. 특히 ‘HONDA !’는 타격감이 큰 비트에서도 단어를 빽빽하게 채우지 않는다. 엔진을 크게 울리면서도 방향을 놓치지 않는 운전처럼, 과속보다 제어가 먼저 들린다.

04

쇼룸을 나와 얼굴을 드러낼 때

취향을 넓게 펼친 만큼 약점도 분명하다. 47분 동안 여러 프로듀서와 게스트를 오가는 중반부는 때때로 한 편의 이야기보다 잘 고른 룩을 차례로 보여주는 쇼룸처럼 느껴진다. 곡 하나하나의 만듦새는 안정적이지만, 어떤 장면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이유보다 그 순간의 멋으로 먼저 기억된다.

후반부의 ‘25’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YANGHONGWON과 마주한 두 목소리는 이 앨범의 세련된 표면에 생의 시간을 다시 끌어들인다. 이어지는 ‘Kid milli interlude.’와 ‘BORA’까지 가면, 앞서 전시된 취향은 한 사람의 얼굴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BEIGE》가 끝내 오래 남기는 것은 최신의 사운드가 아니라, 그 사운드를 고르는 사람의 기준이다.

05

돌아갈 이유가 생긴 앨범

《BEIGE》는 키드밀리의 모든 면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연을 계속 찾되 전부 알아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태도처럼, 여러 가능성을 일부러 남겨둔다. 완벽한 통일감보다 선택의 자유를 택한 결과이고, 그 자유가 산만함으로 번지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요즘다운 소리’를 좇은 기록과 분명히 다르다.

무엇을 새로 입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남겼는지 들려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BEIGE theme’과 ‘HONDA !’의 선언으로, 다음에는 인터루드와 피처링 사이의 관계로, 마지막에는 ‘25’와 ‘BORA’의 얼굴로 돌아오게 된다. 깊이 읽고 중요한 트랙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RITBAK의 감상법에 이보다 잘 맞는 앨범도 드물다.

Credits
Written by
RITBAK Editorial
Published
2026. 07. 27
Album data
Spotify ↗
Tags
2023 / Kid Milli / Korean hip-hop